대중의 희망은 묵살(黙殺)되고, 흉물스러운 정치상품이 심(深)한 악취(惡臭)로 오염되어 재활용도 분리수거도 되지 않는 파쟁(派爭)의 한 해를 보냈다. 진영논리(陣營論理)를 떠나 국민들은 몹시 피로해 지쳐 있다.
인권이 말살(抹殺)되고 왕조시대의 몰락(沒落)으로 세계사적 역사에 오점(汚點)을 남긴 프랑스의 혁명처럼, 유물론적(留物論的) 정치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정착시킬 수 없다.
지금 우리는 분에 넘칠 정도의 자유분방(奔忙)한 문화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지구촌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로,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잘 살아보자’는 일념(一念) 하나로 버텨 왔다. 그 시절 국민정신을 지탱한 것은 도덕적 질서와 윤리 의식이 생활 중심에 굳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포용(包容)하는 넉넉한 민족의 정신문화(精神文化)가 생활 바탕에 혼(魂)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지하고 어두운 역사관(歷史觀)에다 바르지 못한 허황(虛荒)된 정치로 인하여 사회는 오염되고, 존중과 협동 정신으로 성장해 온 사랑의 공동체(共同體)는 서서히 무너졌다.
더 절박(切迫)하고 안타까운 것은 사리(事理)에 걸맞지도 않는 자아식(自我式) 독점력에 빠진 그들 위정자들에게는 이제 어떤 처방도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백약(百藥)이 무효(無效)라, 어떤 합리적인 충고나 정치철학으로도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막무가내(莫無可奈)의 상태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는 포장되고 강압적인 유도일체성(誘導一體性)에 대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여유(旅遊)와 기쁨이 있는 참된 삶을 거두어내는 자신을 다시 만나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찻잔을 마주하며 깊은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하고, 산책으로 향기 있는 자연의 숨결도 느끼고, 지는 석양(夕陽)빛을 보면서 존재(存在)해 온 가치(價値)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고단(孤單)했던 삶에 대한 이유를 다시 찾을 수 있어야 할 때이다.
한때는 잘살아보기 위한 일념(一念)에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히말라야 정상(頂上)을 정복하고 광활한 사막을 질주(疾走)하고도 남을 정도로 상서(祥瑞)로웠던 당당한 기상(氣象)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산에 한 번 가자 하면 “무릎이 아프네요!”, 술 한잔하자고 하면 “건강 때문에—”, 여행을 떠나자 해도 발맞추기가 참 어려워진 사정(事情)에 와 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자유가 제한된 불편한 삶 속에서도 진정한 벗은, 우리를 고달프게만 하는 정치가 아닌 곁에 남아주는 오염되지 않고 향기 나는 자연인이다.
힘들 때나 마음이 흔들려 외로울 때도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사람, 나이와 상관없이 마음으로 이어지는 사람, 그런 이웃이 있다면 남은 생애는 결코 고단(孤單)하지 않은 편안한 삶이 될 것이다.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은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동행의 길에서 비로서 완성된다.
내가 진실로 행복한 인생이 되려면, 받으려 하고 채우려는 욕심이 아닌 먼저 내 마음속에 주는 사랑으로 채워질 때 진정한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된다. 더 이상 우리의 삶이 정쟁(政爭)의 소모품이나 꼭두각시 노릇이 되어서는 안 된다.
“꽉 닫혀 버린 가슴을 열고 병오년 새해 아침을 품어 보자!”
창밖 먼 하늘, 석양(夕陽)에 지는 노을빛 속으로 세속(世俗)의 허물을 벗고 나니, 고달프던 영혼(靈魂)에 날개를 달아 주어 식어 가던 생명줄에 생기가 돋아난다. 받는 사랑은 감사하고, 주는 사랑은 행복을 낳는다.
그간 세파(世波)에 시달리며 견뎌 온 여러분의 노고를 위로하며, 새해부터는 소망은 이루어지고 건강하며 은혜받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2026년 1월 1일
논설위원 정용구